CMS 로그인

초기불교 염처수행

초기 불교 염처수행(Sati, mindfulness)


수념처에 대한 해석


오온에 대한 관찰 중에서 신념처에 해당하는 몸(色 rupa)의 관찰을 제외하면, vedanā의 관찰이 가장 직접적이고 선명하다고 한다.『염처경』주석서에 의하면, 접촉(phassa)나 마음(citta)의 관찰 보다는 감각 혹은 느낌을 관찰하는 것이 쉬우며, 이런 점에서 붓다가 vedanā 관법을 먼저 설했음을 다음과 같이 강조한다.


그렇지만 세존께서 정신영역(arupa)를 대상으로 한 관찰을 설하심에 있어 vedanā 를 통해서 말씀하셨다. 접촉(phassa)이나 마음(citta)을 통해서 말씀하시면 직접적(pakata)이지 않고 모호해 질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vedanā 를 통하면 직접적이다. 왜 그럴까? 감각들은 직접적으로 일어나기 때문이다, 좋고 싫은 감각들의 일어남은 아주 직접적이다. ...... 이처럼 세존께서는 먼저 물질 영역(rupa)을 대상으로 한 관찰을 설하시고 나서, 정신영역을 대상으로 한 관찰에 있어서는 특히 vedanā를 통해서 말씀하신 것이다.


위의 인용문에서 보듯이, 어떤 정신 현상을 있는 그대로 볼 수 있는[如實智見] 가장 직접적이고 자연스러운 방법이 수념처임을 강조하고 있다. 접촉(phassa) 이나 마음(citta)이 직접적이지 않고 명료하지 않다는 말은 12연기에서 볼 때 phassa는 vedanā가 일어나기 직전의 심리현상이다. 즉 6근과 6경이 만날 때 6식이 일어남을 phassa라 한다.

또한 citta는 vedanā의 직후에 일어나는 데 탐애(貪愛 taṇhā)와 혐오등의 심리현상이다 (觸→受→愛)어떤 현상에 대한 좋다 싫다의 가치판단이 phasa의 단계에서는 아직 구체화되지 않았기 때문에 명료하지 않고, citta, 즉 탐애의 단계에서는 이미 구체화되어버린 상태이기에 바로 연이어 집착이 일어난다. 이 집착(upadāna)로 인하여 有→生→老病死등 갖가지 고통이 다 일어나게 된다. 이런 상태로 진행되기 이전이 vedanā 인데 이 vedanā의 관찰이 無常, 苦, 無我 라는 존재의 실상을 직접적으로 파악하는데 가장 적절한 방법임을 강조하고 있는 것이다. 위와 같은 주석서의 해석은 vedanā를 위빠사나 수행의 주 관찰 대상으로 가르치는 고엔카 입장과 일치함을 알 수 있다. 마지막으로『대념처경』결론에 대한 해석을 살펴보자


사념처 수행의 기간과 보편성


『대념처경』은 마지막으로 사념처 수행을 통해서 열반을 얻을 수 있는 수행기간과 결과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한다. “누구라도 이 4념처를 이와 같이 바르게 7년간 수행한다면, 두 가지 결실 중 어느 한 가지 결실이라도 얻을 수 있다. 이 현생에 아라한이 되든지, 아직 집착이 남아있다면 아나함이 될 것이다”


사실 이것은 길게 잡아 7년이지 짧게는 7일 간만이라도 바르게 수행하면 염처 수행에 의한 깨침을 보증하고 있다. 7년간의 긴 기간과 7일이라는 짧은 기간의 차이는 수행자 개개인의 능력이나 근기의 차이에 있는 것임을 말할 것도 없을 것이다. 주석서는 이에 대해하여 보통의 근기를 가진 수행자들을 기준으로 한 것이므로, 정말 근기가 수승한 수행자라면 “아침에 가르침을 듣고 저녁에 깨치든지, 아니면 저녁에 듣고 그 다음날 아침에 깨칠 수도 있다”고 수행의 신속성을 강조한다. 또한 어느 누구를 막론하고 사념처 수해을 이 겅의 가르침대로 실천 한다면 전문 수행인 인 비구 비구니들은 물론이고 우바세 우바이들까지도 모두 깨침을 얻게 된다고 한다. 이처럼 염처 수행의 보편성을 말하고 있다. 현재의 수행인들이 얼마나 신속히 수행을 성취하는 지는 잘 모르겠지만, 현대의 남방 선지식들의 헌신적인 노력과 원력으로 주석서에서 말하는 수행의 보편화가 전 세계적으로 확대되고 있음이 사실이다. 특히 미국에서는 승려들 보다는 일반 불자들이 위빠사나 수행운동(Vipassana Movement)이 활발히 전개되고 있으며, 한국에도 이 수행법이 재가자들 사이에 신속히 보급되고 있는 실정이다


Ⅳ맺음말


지금까지 옛 주석가들이 『대념처경』을 어떻게 이해하고 해석했는지를 알아보았다. 특히 현재 위빠사나 수행자들 사이에 자주 거론되는 문제들에 대한 주석서의 입장을 정리하였다. 시념처의 입출식념에 대한 해석에서 보았듯이 parimukha와 같이 모호한 단어는 옛 주석가들도 역시 다양하게 이해하고 있었다.


사마타 수행의 입장에서는 코나 얼굴등의 특정부위를 지칭하는 특수한 의미로, 위빠사나 수행의 입장에서는 현전하는 어떤 현상에 대해서도 sati를 유지해야 한다는 일반적인 의미로 쓰였다. 또한 주석서는 입출식념을 사마타와 위빠싸나 자체 수행의 입장에서 보았으며, 비판의 소지가 있는 호흡심상, 즉 nimitta에 대해서도 주석서는 이를 호흡관법의 중요한 개념으로 취급한다.


현재에 이런 주석서의 체계를 중실히 따르는것은 파옥의 사마타 수행법인데 삼내를 서위하기 위해서는 먼저 꼭 nimitta를 얻어야 한다. 또한 온몸이 아니라 호흡전체를 관찰하는 것이며, 안과 빡 즉, ajjhattaㅡ 과 bahiddhā는 나의 호흡과 다른이의 호흡을 관찰하는 것으로 되어 있다.


이렇게 수행의 대상을 자신과 다른 이로 나누어 봄은 문자 그대로의 뜻을 적용한 결과이며 이런 이분법적인 해석은 아무래도 수행의 기본 원리에서 벗어난 해석이라 생각된다. 주석서의 수념처 해석이 고엔카의 견해와 거의 일치한다는 점은 특기할 만하다. 고엔카 수행법이 마하시 수행법과 함께 현대 위빠싸나 수행운동을 주도할 수 있는 여러 가지 이유 중에 하나는 vedanā관찰 중심의 일관성, 방법의 간편성과 체계성이 현대인들의 성향과 맞아 떨어진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그 외의 다른 문제들에 대한 고엔카의 경전 해석은 주석서의 입장과 상당히 다르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사념처 수행의 순서와 근기에 관한 주석서의 해석은 근기 설법의 중요성을 역설하고 있다는 점에서 많은 것을 시사해준다. 수행법 자체에 우열이 있는 것이 아니라, 그 방법이 자신의 성향과 기질에 맞는가에 따라 수행의 성패가 결정된다고 보는 것이다. 또한 사념처는 도시로 들어가는 4개의 성문과 같아서 어느 문으로 들어가더라도 8정도의 길을 따라가야 하며. 그 길을 통해서 들어가노라면 괴로움의 해탈 열반이라고 하는 하나의 목적지에 이르게 된다는 점을 가조하고 있다. 사념처는 신→수→심→법 이라는 평면적인 순서로 수행이 진행되는 것이 아니라, 복합적인 관계 속에서 이루어짐을 나타내고 있는 것이다. 옛 주석 문헌을 연구하는 것은 경전을 좀 더 바르게 이해하기위한 것이다. 바른 경전 이해는 정견을 확립시켜주고, 정견은 수행의 바른 방향성을 설정해준다. 수행법에 대한 주석문헌의 해석은 이런 정견이라는 잣대로 가름해보아 어긋남이 없을 때, 실 수행에 적용해 검증을 거쳐야 한다. 만약 지혜와 자비의 실천에 근거한 팔정도의 수행 원리에서 벗어나 있거나 부합도지 않을 때 그 해석은 시대와 지역적인 특성 때문에 입혀진 문화적인 옷이라고 생각해 일단 세심한 주의를 기울일 필요가 있다. 주석문헌에 이런 옛 시대의 거품을 걷어내고 선인들의 견해를 참조하는 일은 옛 것을 배워 지금 여기에 새롭게 계승 발전시키기 위함이다. 이것은 창조적인 작업이며 한국 불교의 수행이론과 실제를 재정립하는데 토대를 마련해 줄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초기불교의 수행』,미산, 중앙승가대학교 대학원 원우회